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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中이야기에 대한 이야기/글 2020. 5. 4. 00:47
아직 읽지 않은 분들에게: 에리히 프롬은 동성애 혐오론자입니다. 책에서 그는 남성적 극과 여성적 극의 합일이 진정한 내면의 합일이며, 동성애는 이러한 합일에 이를 수 없어 결국 실패와 고통으로 끝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역할과 특성을 고정시켜 놓은 채로 논의를 진행하여 논리가 경직되고 불편해지기도 합니다. 저는 이러한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이 책이 제시하는 '성숙한 사랑'의 논의가 매우 가치 있다고 생각하여 본 글을 씁니다만, 읽으려는 분들은 불편함을 감수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은 거리를 둔 리뷰가 불가능하다. 나의 연애라이프와 단단히 붙어있고, 나는 그에서 정서적으로 자유롭지 않다. 그래도 무언가 쓰고 싶었다. 가장 최근의 연애상대는 책이 말하는 '사랑의 기술'을 몸에 익힌 사람이었고, 그렇지 않은 나와의 관계에서 정확히 사랑받지 못했다. 시작부터 끝까지. 반복하고 싶지 않아 사랑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고, 그 책들이 크게 영향을 받은 여기에 왔다.
2017년에는 사랑이 최고의 가치라고 말하면서도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해 변치 않는 말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당장은, 이 책이 제시하는 사랑이 내가 추구하는 그것이라고 말해도 될 것 같다.
p.13,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곧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랑의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사랑받을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사랑스러워지는가 하는 문제이다.
사랑에 대해서 배울 필요가 없다는 태도의 배경이 되는 두 번째 전제는 사랑의 문제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대상'의 문제라는 가정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고, 사랑할 또는 사랑받을 올바른 대상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뿐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사실상 그들은 강렬한 열중, 곧 서로 '미쳐버리는' 것을 열정적인 사랑의 증거로 생각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에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입증할 뿐이다.
*본문 첫 장에 나오는 내용이다. 참으로 반성 많이 했다. 내가 사랑받을 만큼 매력적이어서 지금 사랑을 받고 있다면 관계에서 나는 나의 몫을 다했다는 태도, 그리고 관계 갈등의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는 태도. 그렇지 않은 연애가 없었다. 그리고 거의 모두 나의 열정이 식으며 끝났다.
p.35, 대인간적 융합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가장 강력한 갈망이다.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열정이고 인류를, 집단을, 가족을, 사회를 결합시키는 힘이다... '성숙한 사랑'은 '자신의 통합성', 곧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이다.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에게 각자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p.44, 사랑의 기본적 요소는 보호, 책임, 존경, 지식 등이다...
존경은 다른 사람이 그 나름대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라는 관심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이바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자기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발달하기를 바란다. '내'가 독립을 성취할 때에만, 다시 말하면 목발 없이, 곧 남을 지배하거나 착취하지 않아도 서서 걸을 수 있을 때에만 존경이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존경은 오직 자유를 바탕으로 해서 성립될 수 있다.
어떤 사람을 존경하려면 그를 잘 '알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보호와 책임은 지식에 의해 인도되지 않는다면 맹목일 것이다. 지식은 관심에 의해 동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공허할 것이다.
* 성숙한 사랑의 요소를 인식하고 나면, 특정한 형태의 관계가 쉬이 좌초하고 마는 이유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상대가 나를 좋아해서' 하는 연애와 '외로워서' 하는 연애가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은 이유. 전자는 상대의 존재 자체에 대한 관심이 없이 시작하기 때문이고, 후자는 상대를 존경할 수 없는 상태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물론 관계 내외적인 이유로 관심과 존경을 길어올려 만족스럽게 관계를 지속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p.79, 성적 욕망은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속에서 사랑이라는 관념과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서로를 원할 때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 성적 매력은 순간적으로 합일의 환상을 일으키지만 사랑이 없는 한, 이러한 '합일'은 낯선 사람들을 이전과 마찬가지로 멀리 떨어져 있게 한다. 환상이 사라질 때 그들은 이전보다도 더욱 뚜렷하게 격리감을 느낀다.
p.137, (불행한 결혼의) 이러한 상황에서 어버이들이 흔히 벌이는 논쟁은 화목한 가정이 주는 행복을 자식들에게서 빼앗지 않기 위해서는 헤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자세하게 검토하면 '화목한 가정' 안에 감도는 긴장과 불행의 분위기가 공공연한 결별보다도 자식들에게 더 해롭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공공연한 결별은 적어도 자식들에게, 인간은 용감한 결정에 의해 참을 수 없는 상황을 종결시킬 수 있음을 가르쳐줄 것이다.
p.148, (사랑의 기술을 포함해 어떤 기술이든) 기술의 실용에는 훈련, 인내, 정신 집중, 최고의 관심이 필요하다...
현대인은 일하지 않을 때에는 게을리 지내거나 빈둥거리고 싶어하며, 더 좋은 말을 쓴다면 '긴장을 풀고' 싶어한다. 현대인은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닌 목적을 위해, 자기 나름의 것이 아니라 일의 리듬에 의해 그에게 지시된 방식으로 어쩔 수 없이 하루에 여덟 시간씩 자기의 에너지를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반항한다(즉, 위의 것들을 실천하지 않는다).
책의 후반부에는 사랑의 기술을 터득하기 위한 구체적인 훈련방법이 제시된다. 잘 먹고 잘 자기, 매일 산책과 명상과 독서의 시간 가지기, 과식과 과음하지 않기 등의 기초적인 생활습관을 가장 먼저 제시하는 것이 인상적이다. 지난 주에 LCK 9회 우승(무려)을 달성한 'Faker' 이상혁 선수는 꾸준한 실력 유지 비결을 묻는 질문에 수년 동안 "잘 먹고 잘 자기"라고 대답해왔다. 잘 먹고 잘 자는 것 만으로 기본은 되는 것이니 여러분, 잘 먹고 잘 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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